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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최고의 시나리오

2024-01-16

이론적으로 보면, 아이오와에서의 지난 월요일 밤이 도널드 트럼프 최고의 순간은 아니었다. 니키 헤일리와 론 드산티스가 경선 사퇴를 선언할 수도 있었고, 잭 스미스와 파니 윌리스가 소송을 취하할 수도 있었으며, 조 바이든이 가물가물해진 나머지 방송 도중에 카말라 해리스의 이름을 까먹을 수도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니라도 날씨가 좀 더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

그런 엄청난 이슈까지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트럼프와 트럼프 군단이 기대했던 것보다 나빴냐면 그것도 아님은 분명하다.

다음 주에 있을 뉴 햄프셔 예비선거에서 헤일리를 꺾기 위해 아직 드산티스가 필요했고, 그 풋풋한 플로리다 주지사가 그렇다고해서 트럼프를 위협할만큼 헤일리를 큰 격차로 꺾어선 안됐다. 여전히 둘 다 경선에 남아 서로 반 트럼프 세력의 표를 분열시키며 오히려 트럼프의 세를 집중시킬 수 있도록 응원해 주어야 했다. 둘 다 이루어졌다.

비벡 라마스와미가 사퇴해야 했다. 한 자릿수 밖에 안되는 라마스와미의 표심을 뉴 햄프셔로 돌려야 했다. 그리고 헤일리가 거물 정치인으로부터 지지를 끌어오고 싶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마르코 루비오와 더그 버검 같은 거물 공화당원, 트럼프의 대적자 같은 인사들이 트럼프 본인을 지지해 주었어야 했다. 이것들 마저 이루어졌다.

통계적으로만 본다면 지난 월요일 만으로 공화당 후보로 확정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당대회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갈림길 중 가장 크고 넓으며 목표에 가까운 길에 들어선 것은 분명하다. 헤일리와 드샨티스는 당분간 경선을 지속할 것이고, 이제는 가망없어 보이는 막판 뒤집기에 대한 한 줄기 희망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제법 가파를 것이다.

드산티스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표심을 얻기 위해 분주하고, 헤일리의 고향인 그 곳이 승부처라고 판단한 듯 하다. 헤일리는 뉴 햄프셔에서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오차 범위 내로 트럼프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일단 아이오와 투표 전엔 그랬다). 아이오와 투표에서도 등수는 비록 3위였지만 득표율은 근소한 오차범위이기도 했다.

헤일리가 승부를 이끌기 위해선 뉴 햄프셔에서라도 이기거나, 최소한 “졌지만 잘 싸운” 정도로 패한 후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압승을 거둬야만 한다. 그렇게 이기고도 미시간에서 더 이겨야 하며, 3월 5일에 있을 16개의 예비선거와 전당대회를 어떻게든 비벼보아야 한다. 트럼프 캠프는 이미 수 개월 전에 남아있는 주 들에서 막강한 정치 조직을 구축해놓았을 뿐 아니라 예비선거 규정을 유리하게 바꾸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헤일리가 이 모든 역경을 뚫고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현대 세계 정치사에 한 번도 없던 극적인 결과물이라는 점이 매우 걸리지만, 여태껏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헤일리가 더 이상 오차범위 같은 소리를 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반대로, 트럼프 역시 사법 리스크나 기타 산술적인 문제로 인해 얼마든지 낙마할 수 있다. 오히려 헤일리와 드산티스에게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트럼프가 유죄 판결, 혹은 건강상 사유로 후보 사퇴를 선언할 때 까지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대선을 연임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젊은 것이 장점이다. 전략적으로 버텨서 트럼프가 낙마했을 때 얻을 이득, 버텼다가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입을 타격을 저울질할 시점이다.

트럼프의 대선은, 이렇게 힘든 경선보다도 더욱 험난할 것이다. 2020년 대선보다 설득력 있는 정책으로 중도층 표심을 돌려야 하고, 극우 대법관 3명을 임명해 낙태합헌판례를 뒤엎었던 본인의 전적을 숨기고, 앞으로 낙태 이슈에 더는 아무 입장을 표하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 본인이 이미 낙태 문제에 대해 중도 입장으로 돌아섰으니, 다른 주요 이슈가 터지지 않는 한, 예비선거의 표심이 그대로 갈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