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어린아이들이 간병인 노릇을 하고 있다
- "가장 힘든 건 제가 아직도 17살이라는 사실이에요"
- 약 540만 명의 미성년자들이 친인척의 병간호 노동에 시달려
- 2024-04-27 05:30 ET
휠체어를 타고 있는 어머니를 수발중인 고등학생 레오 레미즈
레오 레미즈는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게임을 좋아하고, 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간병합니다.
일주일에 세 번, 마비된 근육을 풀고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어머니의 팔다리를 스트레칭해 줍니다. 한 동작에 20회씩. 어머니의 손이 떨리면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저녁을 먹여드린 뒤 양치를 해드립니다.
올해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깡마른 15살 소년 레오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이게 제 일상이에요."
전국 요양보호및간병인협회의 보고에 따르면 만성 질환이나 기능 저하가 있는 부모, 조부모, 형제자매를 돌보는 18세 미만 미성년자는 2023년 기준 540만 명으로 추산되며, 20년 전 130만 명 대비 3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한창 때인 청소년들이 암, 쇠약성 질환, 치매, 사고나 전쟁으로 장애를 갖게된 친인척을 위해 먹이고, 입히고, 설거지와 청소를 합니다.
출장간병인 제도와 요양보호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미성년자 간병인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구 고령화, 만성 질환의 증가, 입원 기간의 단축 등의 여러 사회적 변화가 지속되며, 복잡한 의료적 간병조치가 필요한 환자들을 가족구성원, 그 중에서도 오래 집에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에게 떠맡기게 되는 셈이죠.
통계를 보면, 아이들 중 70%는 부모나 조부모를 돌보고 있습니다. 이 중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결석하고, 소외감을 느끼며,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몸부림친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공부, 친구들과의 교류만으로도 힘들 나이에 요리, 청소는 물론 병간호와 주사 같은 의료행위까지 해야합니다. 부담스럽고 힘들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플로리다의 열 두 살 소녀가 저희에게 보내준 편지가 있습니다.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화를 적어주었어요. 아버지가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집에서 너무 힘들었을 땐 학교에서 수업 중에 그냥 잠이 들기도 한다던지 하는 이야기 말이죠.
전국에서 그나마 이런 아이들을 조사하는 몇 안되는 주인 플로리다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중학생의 1/4, 고등학생의 16%가 학생과 간병인과 가정주부를 겸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 2주 이상 지속적인 우울증을 경험할 확률이 15% 더 높았다고도 하죠.
증가하는 수요
부모가 생업을 위해 출근하면, 아이들이 치매를 앓고 있는 조부모,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형재자매를 돌보게 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이 아이들은 환자 가족들이 밤 중에 화장실에 갈 경우를 대비해 침실을 같이 쓰는 경우도 많죠.
플로리다 보카 레이턴에 위치한 전국 간병청소년협회 회장 코니 시스콥스키 씨는 울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아이들이 무슨 상황에 쳐해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협회는 팜비치 카운티 청소년들이 간병과 집안일에서 벗어나 짧게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1박 2일의 캠프를 개최합니다. 집을 떠날 수 없는 처지를 감안해 튜터와 멘토를 보내주고, 온라인 화상으로 즐길 수 있는 여러 액티비티 게임을 시행하죠. 참가하는 아이들은 보통 일과에 지쳐 학교 생활에 소홀해진 아이들을 학교에서 파악해 상담사와 의논한 뒤 의뢰하게 됩니다.
재향군인회와 루게릭 환우 모임, 암환자 간병협회 등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희생의 대가
이런 아이들 중 상당수는 가계부 작성, 식단 관리 같은 전문 기술에 익숙해져 있고, 성격적으로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에 반한 대가도 당연히 있지요. 타인의 안부에 대해 비이성적인 책임감을 느끼거나,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를 놓치게 됩니다.
플로리다 라비에라 비치에서 만난 고등학교 3학년, 아르케리아 프로펫은 가장 힘든 게 무어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어요.
"저는 겨우 17살인데, 인생에서 책임져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가장 힘드네요."
아르케리아의 여동생, 올해로 9살인 아니야는 발달 장애를 가졌습니다. 걷지도, 기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아니야가 아파서 특수학교에 등교할 수 없는 날에는 아르케리아가 집에 남아 아니야를 먹이고, 목욕시키고, 옷을 입혀줍니다. 그래야만 이미 모든 병가와 연차를 다 써버린 어머니가 학교 식당으로 출근할 수 있기 때문이죠.
네 아이의 엄마, 싱글맘 카프리다 시르만스 씨 역시 책임감은 막중합니다.
"제가 일을 해 월급을 받아야 아이들이 생활할 수 있어요."
장학금을 탈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 아르케리아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 작업치료를 공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플로리다 레이크 워스에 사는 14살의 세 쌍둥이는 하루 종일 거실 침대에서 지내는 어머니를 위해 삼교대로 요리, 청소, 빨래를 맡아 합니다.
"아이들이 제 시트도 갈아주고 음식도 가져다 줘요."
든든한 골든 가 세 총각들의 어머니인 나델은 2020년에 척추관 협착증으로 발생한 골극을 대대적으로 제거했습니다. 수술은 잘 됐지만 보행기에 의지해 열 걸음 정도 움직일 수 있을 뿐이고, 당뇨도 앓기 시작해 더 큰 수술은 요원하죠.
등교하기 전, 매튜, 마크, 루크는 작은 아이스박스에 얼음과 물, 차 종류를 채웁니다. 그리고 쟁반에 그래놀라 바와 과일을 담아 어머니 곁에 가져다주죠.
삼형제가 하교하면, 여전히 아버지는 퇴근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직접 저녁을 요리합니다. 루크는 어머니에게 당뇨 주사를 놓는 일을 전담하고 있죠. 매달 비타민 B-12 주사를
집에 돌아오면 아빠가 아직 일하고 있는 동안 저녁 준비를 돕습니다. 루크는 매 주마다 당뇨 주사, 매 달마다 비타민 B-12 주사를 어머니에게 놓아주는 일과 21가지 약을 정리해 한 주 단위로로 소분해놓는 일을 전담합니다.
"복용하실 약이 하도 많아야죠. 다 소분해서 매일 케이스에 넣어드려요."
루크의 대답은 담담했습니다.
레오의 책임감
레오의 어머니 제시카 레미즈 씨는 20년 전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었었습니다. 처음에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다닐 수 있었지만 부상 부위 디스크가 터져 신경을 눌러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보행기를 짚고 다니게 되었고, 약물 부작용으로 수전증이 생긴 뒤로는 휠체어를 탑니다.
"엄청 무서웠죠."
어머니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린 중학생 레오는 그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리치료 보험 혜택이 중단된 후, 처음엔 레오의 큰 형이, 그 다음은 누나 피비가, 그리고 지금은 레오가 집안일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롤란도 씨는 출근하기 전에 제스 씨를 침대에서 일으켜 옷을 입히고, 휠체어에 앉히는 일 까지를 해놓죠.
이런 저런 집안일과 병간호 외에도 레오는 가계부를 정리하고 여러 고지서에 따라 이런 저런 금전을 관리합니다. 한 때 주 정부 세무처에서 일했던 제스 씨의 손이 떨리기 시작한 뒤로는 레오가 어머니의 스마트폰을 대신 조작하고 있죠.
"레오가 나서서 어려운 일을 해 주는 게 자랑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이라 한 편으론 슬프네요."
피비 누나도 레오를 걱정하곤 합니다.
"레오가 친구들하고 좀 놀았으면 좋겠어요. 사교성이 떨어져서…"
반면 레오는 어머니를 홀로 두면 마음이 불편해서 쉽사리 나갈 수 없다고 합니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매 주 목요일마다 모여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라멘을 먹는 방과후 동아리 활동 정도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또 중학교 때 학교에서 알려준 전국 간병청소년협회 덕분에 여러 친구들도 만났고, 1박 2일 캠프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협회에서 연결해 준 멘토는 자주 레오에게 놀러와 함께 운동도 하고, 스포츠 경기나 공연을 보여주러 가기도 합니다. 롤란도 씨는 아들이 이런 나들이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동심을 되찾고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고 안심하고 있지요.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레오는 망설임없이 물리치료사라고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전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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