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s the Trojan Horse Real?

트로이 목마는 실화였을까

거대한 나무 말에 탄 채 도시에 잠입하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 2024-03 Issue 3


675년 경에 제작된 미코노스 꽃병, 트로이 목마가 묘사되어있다 / akg-images

1873년 독일인 유적 사업가이자, 이젠 고고학자로도 이름을 남긴 하인리히 슐리만이 터키 히살릭에서 거대한 대도시 유적을 발견한 뒤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행적, 트로이의 존재는 사실로 밝혀졌다. 일리아스의 내용 전체는 몰라도, 기원 전 1275~1260년 부근에 파괴된 성벽이 발견되었다. 물론 이 파괴가 진짜 전쟁 때문인지, 자연재해 때문인지,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가장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말이다. 이 전쟁의 주인공이 진짜 말이었던 것인지, 비유되는 상징인 것인지, 그냥 박진감 넘치는 창작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수많은 학자들이 이미 각종 학설을 제시해왔다. 말의 정체는 공성탑이나 파성추 같은 공성무기다. 아니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은유다. 그리스 본토에서 온 추가 병력에 대한 비유다 등등. 실제로 호메로스는 자신의 작품에서 배를 두고 "심해를 달리는 말"이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비슷한 그리스 극작가 에우리피데스 역시 말과 배를 동일시한 비유를 자주 사용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진짜 말"이 아니라고 치부하기엔, 일리아스 속 묘사가 너무 과도하게 현실적이었다. 유적과 사료 만으로도 말을 제작한 당사자 (에페이우스), 말을 만들기 위해 목재를 벌목한 곳 (이다 산) 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말을 활용한 방법도 전쟁을 모르는 시문학가의 상상이라기엔 너무 정밀했다. 바퀴를 달았고, 아마 섬유로 꼰 밧줄로 성 안까지 끌고 들어갔으며, 꼬리와 무릎, 눈이 실제로 움직였다고 한다. 후대에는 내부에서 옆구리 쪽 문을 열 수 있었으며 밧줄이나 그에 준하는 줄사다리를 타고 드나들 수 있었다는 묘사까지 나왔다.

말에 탑승한 전사들에 대해서는 작가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몇몇 영웅들은 공통적으로 등장하지만 정확한 숫자가 문제다. 침투조는 모두 몇 명이었을까. 위대한 용사 30인? 50인? 100인? 물론 목재 말에 3000 명이 탑승해 있었다는 어떤 기록은 소설적 과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명이 탑승했던지 간에 목마의 내부는 굉장히 혼잡했을 것이고, 갑옷과 무기가 서로 부딪혀 덜그럭거렸을 것이다.

병력의 규모나 무기의 소음같은 잡다한 문제를 다 제쳐두더라도, 한 가지는 명확하다. 이 작전이 절대 상식적인 작전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작전은 얼마나 (그리스스러우면서도 오디세우스스럽게) 트로이인을 잘 속여 넘기느냐에 성패가 달려있었다. 목마 전략은 단 한 번 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마지막으로, 왜 하필 말 모양의 조각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말이라는 동물이 상징하는 바가 있었던 것일까. 선물상자처럼 간단한 모양이 아니고, 타고 있던 배를 건져올려놓은 것도 아니고, 왜 하필 말이었을까.

트로이 전쟁이 진행되던 후기 청동기 시대에는, 지중해 근방에서 가장 중요한 동물이 바로 말이었다. 여행 수단을 넘어 교통 수단으로 기능했으며, 부와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기능했다. 전차를 모는 그리스 전차병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말을 잘 다루는 것은 그 자체로 전쟁 기술이자 경력이었다.

트로이 전쟁보다 500년 정도 흐른 뒤에 지어진 일리아스에는, 트로이인이건 그리스인이건 수 많은 영웅들이 말을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양국의 수 많은 영웅들은 말과 관련된 이름(히파소스, 히포다마스, 히포마코스 등의 hippo 돌림자. hippo는 그리스어로 말이다)을 갖고 있다. 특히 트로이인들이 말과 아주 밀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메로스는 트로이가 대규모 말 사육업을 했다는 이유로 트로이인을 "말 조련사"라고 칭했다. 말 그대로 목마는 말의 도시에 말의 형태로 들어온 재앙 그 무언가에 대항 문학적이고 상징적인 은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트로이 목마는 인간인 영웅 뿐 아니라 장수하는 신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더 구체적으로, 지혜, 전쟁, 기마 전차술의 신인 아테나가 전쟁에 개입했다는 상징인 것이다. 아테나의 관장 분야를 모두 통합하면 말 모양 전차를 타고 도시로 들어가 전쟁을 끝내는 지혜가 완성된다. 아테나는 에페이우스의 꿈에 현몽하여 대전략의 핵심 아이디어를 제시했으며, 그리스인들이 트로이에 말을 진입시킨 핑계 역시, 실제로는 트로이가 도시로 말을 끌고가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지만, 표면적으로는 아테나 여신에 대한 공물로 바쳐 무사히 후퇴하기 위함이었다.

수 많은 고대 기록에 나타나는 그 모든 목마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그리고 수 많은 현대 학자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트로이 목마 작전에 대해 특정한 가설을 확답해 줄 수는 없다. 목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록에서 언급하는 사건이 벌어진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작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제는 이 일이 실제인지 비유인지, 그 중간 어딘가의 무엇인지 말할 수 없지만, 위대한 지혜와 대담한 용기, 그리고 교활한 재치가 하나로 합쳐진 에피소드로서 고대는 물론 현대와 미래에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불러일으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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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 the Trojan Horse Real?

Stone age wall found at bottom of Baltic Sea ‘may be Europe’s oldest megastructure’

발트해 밑에 가라앉아 있던, ‘유럽 최고最古일지도 모를’ 장벽

독일 해안에서부터 1km 가량을 뻗어나간 성곽 발견. 과거엔 호수였을 것으로 추정

  • 2024-02-12 20:00 GMT


큰 바위를 기반으로 작은 돌을 끼워넣어 얽은 벽채, 사냥을 목적으로 지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 Philipp Hoy

독일 발트해 연안의 파도 아래에서, 어쩌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을지도 모를 거대구조물이 발견되었다.

해상 연구용 선박에서 멀티빔 음파탐지장비로 바다를 연구하던 해양학자들이 우연히 메클렌부르크 만에서 시작해 해저로 약 1km에 걸쳐 뻗어 있는 거대한 성곽을 발견한 것이다.

해저탐지장비로 발견했기 때문에 깜빡이는 벽 (Blinkerwall)이라고 이름붙은 이 구조물은 약 300개의 큰 바위와 약 1400개의 작은 바위를 얽어 만들어진 것으로, 상당 수는의 큰 바위들은 몇 사람이 모여 옮기는 수준보다 훨씬 거대했다.

벽의 용도를 파악하긴 쉽지 않지만, 아마도 사냥꾼들이 야생 순록 무리를 몰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트해 연안 도시인 바르네뮌데의 라이프니츠 해양연구소 연구원 야콥 게르센은 "야생동물들은 도망갈 때 이런 구조물을 뛰어넘지 않고 보통 옆으로 우회하려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라며 성곽에 대해 추론했다.

"사냥꾼들은 최종 경로에 두 번째 벽이나 호숫가에 인공 병목 현상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연구진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서, 해저 퇴적물에 묻혀있을 이 두 번째 벽의 위치를 추정하여 발표했다.

호숫가로 우회했을 경우에는 창, 활로 무장한 사냥꾼들이 카누를 타고 호수 위에서 사냥감을 몰았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게르센 연구팀은 971미터에 달하는 규모와 형태를 고려했을 때, 빙하, 파도 등에 의해 이 구조물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을 확률이 거의 없다고 결론내렸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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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age wall found at bottom of Baltic Sea ‘may be Europe’s oldest megastru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