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신기한 골프 코스 탑 10
- 2024-04-09 09:38 EDT
골프의 운동강도만 놓고 보자면, 익스트림 스포츠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골프는 큰 부상 없이 비교적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며, 정말 아름답지만 한 편으로는 평범한 풍경을 바라보는, 정적인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비교적 이라고 말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몇몇 지역에서는, 골프가 상당히 익스트림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로 익스트림하냐면, 누드로 스윙을 쳐야 한다던지, 티 구역까지 헬기를 타고 가야 한다던지, 활화산 주둥이를 따라 공을 쳐야 한다던지, 해저드에 악어와 상어가 사는 경우도 있다.
전설적인 골프 코스 디자이너 피트 다이는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진정한 골퍼라면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에 깃발을 꽂아 놓고 싶어야 한다.”
본지는 오늘 피트 다이의 정신에 부합하는 골프장을 몇 군데를 소개하고자 한다.
페어웨이에서 활주로까지
칸타랏 골프 코스, 태국 방콕
일반적으로 골퍼들은 스윙할 때 조용한 것을 선호한다. 프로 대회에서는 경기 진행요원이 팻말을 들어 관중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매너다.
방콕의 칸타랏 골프 코스에서는 애석하게도 프로 경기가 열리지 않는다. 칸타랏 필드에 올라선 플레이어들은 주기적으로 코스의 양쪽에서 이착륙하는 여객기의 굉음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칸타랏 골프 코스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비행장인 돈무앙 국제공항의 두 활주로 사이에 위치해 있다. 18홀, 파 72 의 정석적인 코스이며, 1952년 태국 왕립 공군이 건설했다. 태국의 수도에 세워진 최초의 골프장이자 후아힌 로얄 골프장에 이어 태국 전체에서 두 번째로 건설된 골프장이다.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평일 라운드 비용은 300바트로, 소음으로부터 정신을 수양할 수만 있다면 몹시 합리적인 1만 원 선이다. 공군 장병은 할인된 가격인 100바트(약 4천원)에 플레이할 수 있다.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골퍼들 옆에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 Jack Taylor / AFP / Getty Images
비무장 드라이브
캠프 보니파스 골프 코스, 대한민국
1988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골프 코스”이기도 한 캠프 보니파스 코스는 남북한을 가르는 비무장지대(DMZ)에서 남쪽으로 20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192 야드 파3 싱글 홀이다. 엄밀히 말해 코스는 아닌 셈.
대한민국 국군과 주한 미군의 안내를 따라 군부대로 진입해 표지판을 따라 가면,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페어웨이가 우리를 맞이한다. 한 쪽은 철조망, 다른 한 쪽은 군용 참호, 끝은 인조잔디로 만든 그린이 있다.
보통 골프 코스의 표지판은 해당 홀이 몇 미터인지, 언덕 구조는 어떤지 하는 정보가 적혀있게 마련이다. 캠프 포니파스도 일단은 그런 내용이 적혀있다. 그 위에 더 큰 글씨로 “러프는 지뢰밭이니 빠지지 않게 주의할 것” 이라고 적혀있다는 점이 살짝 다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재미없는 농담처럼 들릴 수 있다. 1998년 워싱턴 포스트 지에서 러프에 빠진 공 때문에 지뢰가 터졌다는 소식을 보도하기 전까진 그럴 것이다.
캠프 보니파스에서 골프를 칠 때의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 / Paul Barker / X00020
헬리콥터 홀 아웃
레전드 골프 앤 사파리 리조트, 림포포 주, 남아프리카공화국
18명의 프로 골퍼가 디자인한 18홀로 구성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레전드 골프 코스는 극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하다. 보통 플레이어들이 18홀을 다 돌고 나면 클럽하우스로 걸어가면 되지만, 여기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긴 파3 홀로 가기 위해 헬리콥터를 탈 필요가 있다.
“익스트림 19홀” 이라고 이름붙은 티 존은 행립 산자락의 해발 1,300 미터 높이의 절벽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다. 티 존에 도착해 약 400 미터 아래, 361 미터 앞을 내려다보면 아프리카 대륙 모양을 형상화한 작은 그린을 볼 수 있다. 어떻게 휘둘러도 30초 이상 공이 날아가야 하기 때문에 첨단 카메라 트래킹 기술을 활용해 공을 추적한다.
티에서 바라본 “익스트림 19홀”의 그린 전경. / Richard Heathcote / Getty Images
남아프리카공화국 관광청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골퍼와 유명 인사들이 이 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배우 모건 프리먼도 이 홀에서 파를 기록한 엘리트 그룹 중 한 명이다.
이외에도 바베이도스의 크리켓 선수 프랭클린 스티븐슨이 최초로 버디를 기록했었고, 뮤지션 필 콜린스는 더블 보기를 기록해 아쉬움을 남겼다.
골프 핀과 샥스핀
카브룩 골프 클럽, 퀸즈랜드, 호주
라운드 도중 공이 물에 빠지면 물 속에서 공을 찾으며 패배의 쓴 물을 마셔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카브룩 골프 클럽에서는 그나마 물에 들어가지도 못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퀸즈랜드에 위치한 이 코스에는 예전부터 상어가 산다는 무서운 입소문이 있었다. 2011년 총지배인 스콧 와그스태프가 그린 바로 앞을 돌고 있는 상어 지느러미를 촬영하며 소문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생물학자들이 가장 공격적인 상어 종이라고 손에 꼽는 황소상어가 골프장에 전입신고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1990년대 중반의 대홍수 때문이라고 한다. 와그스태프가 2012년 Golfing World 와 인터뷰에서 말하길, 상어들은 코스 인근의 로건 강이 범람하며 코스 안 쪽 호수로 흘러 들어왔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곳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이제 상어는 이 코스의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했다. 클럽 로고에는 상어가 그려져 있고, 청소년 프로그램은 주니어 샤크 아카데미로 명명되었으며, 매월 토너먼트 형식으로 ‘샤크 레이크 챌린지’를 개최하고 있다.
고추장 마킹
바이칼 호수, 시베리아, 러시아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에서 골프 대회를 진행한다 그러면 우선 공이 물에 빠졌을 때 어떻게 건져야되나를 고민할 것이다. 그 고민을 해결할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하나다. 호수가 얼어붙으면 치면 된다.
매년 3월 바이칼 호수에서는 ‘바이칼 프라이즈 오픈’이 열리는데, 참가자들은 코트와 장갑을 착용하고 얼어붙은 호수의 빙판 위에서 골프를 치게 된다. 공은 끝없이 펼쳐진 눈과 얼음 바닥에서 눈에 잘 띄도록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등 선명한 색을 사용해야 하며, 마커 칩 또한 마찬가지다. 홀 역시 더 크게 파여있다.
2020년에는, 기존에 그린란드의 움마나크 호수에서 개최되던 세계 아이스 골프 선수권 대회가 바이칼에서 개최되도 했다.
2002년 그린란드 움마나크에서 열린 드램부이 세계 아이스 골프 선수권 대회, 미국의 잭 오키프 선수가 칩 인 버디를 시도하고 있다. Alex Livesey / Getty Images
플라이 투 더 문
프라 마우로 포메이션, 달
물론 달에는 골프장이 없다. 하지만 익스트림 골프를 말하자면 이 세상을 벗어나 골프채를 휘두른 1971년 2월 앨런 셰퍼드의 전설을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다.
아폴로 14호 발사 당시 우주복 틈에 개조한 접이식 골프 클럽을 몰래 숨겨 넣고 탑승했던 이 용감한 우주비행사는 달 표면에 착륙해 골프 역사상 가장 끝내주는 두 번의 샷을 날렸고, 이는 달 표면에서 이루어진 유일한 샷이었다. 첫 번째 샷은 땅을 긁었고, 두 번째 샷은 목청 크게 외친 “몇 마일, 몇 마일, 몇 마일” 만큼은 못 날아간 40야드를 기록했다. 물론 그 40야드의 업적은 NASA가 진행한 모든 우주 임무 중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순간으로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바람이나 침식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 공은 반세기 넘게 그 자리에 시간에 정지된 채로 남아 있다. 지난 달 아르테미스 1호가 발사되면서 인류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달 표면으로의 귀환이 다시금 현실화되고 있지만, 우주에서 가장 특별한 골프 클럽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사용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NASA의 수석 역사학자 브라이언 오돔은 CNN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언젠가는 달에 정착지가 생길 수도 있죠. 그렇다면 우리가 콜로세움이나 스톤헨지에서 골프를 치지는 않듯, 아폴로 착륙지에서 장난을 치진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 공의 위치는 지금 그 곳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미래시대의 유물인 셈이죠.”
화재火災의 코스
볼케이노 골프 코스, 하와이, 미국
“키라우에아 화산맥은 세계에서 가장 활화산이 많이 모인 산맥이다.”
미국 지질조사국의 설명을 들어보니 골프 코스를 짓기에 참 알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
하와이 섬 남동쪽, 가장 끄트머리의 큰 화산의 분화구에는 볼케이노 골프 코스는 “구기종목”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해발 100 미터 위에 위치한 이 코스는, 서쪽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활화산인 마우나 로아, 북쪽으로는 마우나 케아 화산에 감쌓여 있다.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전경이라 할 수 있다.
이만큼 가까운 덕에 골프장에 방문한 플레이어들은 이달 초 킬라우에아 화산과 마우나 로아 화산이 분출하는 장면을 가장 앞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2018년 있었던 킬라우에아 화산 대분화는 주변 수백 채의 주택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지만, 2021년부터 시작된 지속적인 잔여 분출로 현재는 용암이 분화구에 갇혀 있는 상태다.
2018년 5월, 킬라우에아 크레이터에서 올라오는 화산연을 바라보며 아이언을 휘두르는 골퍼 / Caleb Jones / AP
악어 가죽은 장식이 아닙니다
키아와 아일랜드 골프 리조트, 사우스 캐롤라이나, 미국
골프 역사에 손꼽히게 어려운 코스에 도전하는 것, 이 정도 수준으로는 가슴떨리는 긴장감이 차오르지 않는 이들에게는 키아와 아일랜드의 오션 코스를 추천한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동네 이웃들과 페어웨이에서 만나는 옵션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1991년 라이더컵과 2012년 PGA 챔피언십을 개최한 키아와 리조트에서는 거북이, 돌고래, 살쾡이 등 다양한 야생 동물을 만나 볼 수 있지만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친구를 하나 꼽자면 단연 악어라 할 수 있다. 워터 해저드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던지,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햇살을 쬐며 일광욕을 즐기는 것이 주요 일과다. 리조트 직원 브라이언 헌터는 이 친구들이 원래 사람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관리가 거의 필요하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악어를 존중해 주고, 먹이를 주거나 괴롭히는 일을 하지만 않는다면 관리할 것이 많지 않아요”
악어를 괴롭히다 적발되면 2,0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키아와 아일랜드의 오션 코스에서 열린 2021 PGA 챔피언십에서 악어가 여섯 번째 그린을 건너고 있다. Gregory Shamus / Getty Images
“악어에게 먹이를 주게 되면 악어들이 사람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게 됩니다. 듣기만 해도 썩 좋은 발상이 아니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한 멀리서 관찰하고 감상하는 것입니다.”
롱 게임
눌라보 링크스, 오스트레일리아
힘차게 첫 홀을 끝마쳤다. 이제 남은 거리는 17홀, 1,390 km만 더 가면 된다. 세계에서 가장 긴 골프 코스인 눌라보 링크스에서는 진짜 “롱 게임”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세두나에서 출발한 플레이어들은 인근 마을과 에어 고속도로를 따라 주욱 늘어선 홀을 차례로 들르며 최종적으로 며칠 뒤엔 서부 도시 칼굴리에서 티오프 할 수 있다.
세두나(오른쪽)에서 칼굴리(왼쪽)까지 이어지는 눌라보 링크스 코스 지도. / Alf Caputo / Nullarbor Links
눌라보 링크스 횡단은 전 세계 골퍼들이 꼭 도전해 볼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눌라보 링크스에서는 해마다 코스 전체를 횡단하는 ‘체이싱 더 선’ 토너먼트를 개최한다.
너무 개방적인 페어웨이
라 제니, 르 포르주, 프랑스
골프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골프장의 드레스 코드다. 이에 대해 굉장히 독특한 해결책을 내놓은 골프장이 있다. 바로 아예 안 입기다.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근교에 위치한 라 제니 자연주의 휴양 리조트는 아마도 세계 유일의 자연주의 골프 코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 홀을 도는 동안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날씨가 안좋을 때만 예외다).
라 제니의 그린, 예의상 아주 작게 촬영한 골퍼들. 모두 규정을 잘 지키고 있다 / Paula Gallani / La Jenny
리조트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놀랍게도 라 제니 골프 코스는 토너먼트는 물론 프로-아마추어 대회도 개최하며, 리조트 고객들에게 골프 연습장과, 프랑스인 PGA 회원들이 가르치는 레슨도 제공한다고 한다. 물론 드레스 코드는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